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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6기 #5 - 프란츠 콘비취니/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by iMac 2017. 5. 18.


독일적인 음향에 대해서


종종 '독일적'인 음향이라는 표현을 보곤 하는데, 이게 사실 딱히 어떤 소리를 뜻하는지 글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다소 막연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는데, 음악을 언어로 묘사한다는 것 만큼 부질없게 느껴지는 시도도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흔히 사용하는 '독일적'인 음향이라 묘사되는 오케스트라 음향에 대해 굳이 내 나름대로 적어보자면, 어두운 음색에 힘이 가득 실려 묵직하게 가라앉은 음향 정도로 생각된다. 과연 이것이 '독일적'인 음향이란 말인가?






프란츠 콘비취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1959~1961)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프란츠 콘비취니(Franz Konwitschny, 1901~1962)는 그야말로 안타깝게 때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휘자였다. 위스키를 너무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과음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남겨 놓은 녹음들 몇가지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연주가 훌륭해서 더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처음에 큰 기대 없이 집어들었다가 깜짝 놀란 바로 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듣고 있으면 정말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그 옛날 멘델스존이 지휘봉을 잡았던 전통이 있을 정도로 독일내에서 그 명성이 드높았던 단체였다. 2차대전 이전에는 베를린 필과 함께 독일 내 양대 정상급 오케스트라였는데 20세기초만해도 신생 오케스트라였던 베를린 필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다. 


과거 아르투르 니키쉬가 게반트하우스와 베를린 필 두 곳을 겸직하고 있었고, 푸르트벵글러도 취임 초기 양 쪽 모두를 니키쉬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후에는 아시다시피 계속해서 떠오르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게 된 베를린 필에 비하면 게반트하우스는 2차대전 이후 동독에 속하게 되면서 과거의 명성에는 다소 못미치는 상황이 되었다.


동독에 속하게 된 과거의 유명 오케스트라에 대해 종종 오히려 과도하게 '서구화'된 서독 오케스트라에 비해 과거의 전통을 잘 유지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 좋게 말하면 과거의 전통이고 달리 말하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악기 교체도 어려워서 음색이 수수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냥 긍정적이거나 미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저런 상상적인 해석을 걷어내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이 연주를 듣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는데, 맨 처음 생각해본 '독일적'인 음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통상적인 의미의 '독일적'인 음향이라는 관점이 이 연주에서는 아주 간단히 빗나가버린다. 





단적으로 말해, 이토록 투명한 음향이 그 시절에 이미 가능했다는 것이 놀랍다. 우직하게 생긴 외모만 보면 뭔가 굵직굵직하고 묵직한 음향을 들려줄 것만 같은데, 너무나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동시에 정밀하게 다듬어진 울림에 뒤통수를 한대 맞는 기분이 든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진행하면서 동시에 적절히 쾌적하게 움직일 줄도 안다. 


여기에 어지간한 반복을 모두 연주하고 있는데 3번 1악장도 마찬가지. 다만 1악장 마지막 코다부분 가필은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정도가 어디인가 싶다. 무겁고 어두운 음색이 '독일적'이라는 통념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멋진 연주이다. 현악 앙상블은 아주 섬세하고 세련되기까지 해서 낡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관악이 다소 예스럽기는 하지만 크게 거북할 정도는 아니고 무엇보다도 관과 현의 밸런스가 환상적이어서 텁텁한 느낌이 전혀 없이 시종일관 상쾌하다. 그 어떠한 복잡한 리듬도 자연스럽게 술술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비록 전반적인 인상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단일 오케스트라에 의한 완성도 높은 연주라는 점에서 전집으로서의 가치가 훌륭한 연주이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콘비취니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오늘날 많이 알고 있는 쿠르트 마주어의 시대는 내 취향에는 아무리 들어봐도 몰개성적인 스타일이어서 동독에 위치해서 전통을 지켰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생각된다. 최근 샤이 시대에 비로소 콘비취니 시대에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음색이 살아나는 듯 했고 최근에 들은 넬손스 지휘 연주에서 그 아름다운 음향이 완전히 되살아난 느낌을 받았다. 


어둡고 무겁거나 날카롭거나 거칠고 사나워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자연스럽고 투명한 울림으로 충분히 짜릿함을 안겨주는 완성도 높은 베토벤 교향곡 연주로 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보물같은 음반이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붙은 보다 유명한 그 어떠한 음반보다도 더 좋아하게 된 보석같은 연주로 적극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