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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6기 #7 - 라인스도르프 / 번스타인

by iMac 2017. 10. 4.


우려했던 대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음반 듣기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보다 빠른 진도를 위해 라인스도르프와 번스타인의 전곡음반을 한 번에 포스팅해본다. 한 번에 글을 올리는데에는 앞서 말한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둘 다 내 취향에 자주 손이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리히 라인스도르프/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2~1969)


라인스도르프는(Erich Leinsdorf, 1912~1993) 나에게는 거의 낯선 지휘자이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음반 이전에는 딱 하나 데카에서 녹음한 바그너의 발퀴레 전곡 음반 하나가 유일한 음반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태계 지휘자로서 자연스레 2차대전 무렵에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을 하게 된 경우인데 지금은 주로 메트로폴리턴에서 지휘한 바그너 오페라 실황 녹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1962~1969) 경력이 가장 눈에 띄는 경력인데, 이 전집음반은 주로 67~69년 기간에 집중적으로 녹음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보스턴 재임기간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에 걸쳐 있다. 


지휘자로서의 평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앞서 포스팅한 조지 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오랜 활동경력이 말해 주듯, 이 음반에 담겨 있는 연주의 수준을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음반의 장점이라면 단연 음악이 편안하게 잘 들린다는 점이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안정적인 합주력이 뒷받침된 모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장점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베토벤 음악에서 기대하는 격정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다. 조지 셀/클리블랜드의 연주에서 느껴지던 뭐라 설명하기 힘든 전투적인 아우라가 아쉽다. 


베토벤 교향곡에서 기대하게 되는 폭발적인 힘과 비장함같은 맛은 부족하지만 음악을 편안하게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조지 셀의 사나운 연주보다 낫다. 마지막 9번 교향곡 연주는 그야말로 임기 마지막 고별 공연 실황이라고 들었는데, 실황이어서 그런지 훨씬 긴장감이 가득해서 좀 더 들을만 하다. 젊은 시절의 도밍고가 테너를 맡고 있는 점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미국 오케스트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기에 큰 기대 없이 들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은, 하지만 또 듣고 싶어 손이 자주 갈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연주. 다분히 주관적이고 근거 없는 막연한 표현이지만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생각해보자면 낙천적인 빈 토박이 출신 다운 연주라고 해야 할까?



레너드 번스타인/뉴욕 필하모닉 (1961~1964)


예전에 한 때 이 무렵 번스타인의(Leonard Bernstein, 1918~1990) 베토벤 교향곡 녹음을 좋게 들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래봤자 1, 3번만 들어본 것이 전부였다. 이번에 다시 전곡을 들어보니 예전에 막연하게 좋게 생각했던 것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라인스도르프가 빈 출신의 유태인이라면 번스타인은 미국출신 유태인. 그래서 그런 것일까? 출신지에 따른 영향으로 연관짓는 것은 썩 내키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라인스도르프가 만들어 낸 음악이 더 들을 만 했다. 


번스타인/뉴욕 필의 전집은 번스타인이 한창 수퍼스타로 각광받던 무렵의 기록으로 열정과 의욕이 엿보이지만 동시에 한계도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음향 자체가 이무렵 뉴욕 필은 보스턴 심포니의 적수가 아닌 듯 싶다. 풍성하고 윤택한 현악과 목관의 앙상블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라인스도르프/보스턴 심포니에 비하면 번스타인/뉴욕 필은 일단 녹음도 좀 답답하고 결정적으로 음색이라는 점에서 별 특징이 없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지휘자의 해석인데, 전투적이라는 점에서라면 라인스도르프 보다는 훨씬 들을 만 하지만 조지 셀에는 여전히 못미치고 몇 몇 곡은 오히려 지나친 신파조 내지는 독특한 관점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5번은 시종일관 번스타인의 다른 녹음들도 느릿한 템포를 고수하고 있어서 그냥 스타일이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이것 보다는 라인스도르프가 좀 더 전형적인 맛이 있다) 9번에 이르면 여러 모로 설익은 해석이 느껴진다. 


2악장까지는 그런대로 들을 만 했는데, 3악장에 이르면 음악의 흐름이 정체되는 듯 답답해진다. 마지막 악장에 이르면 자연스럽지 못한 흐름에 더해 합창단과 성악진의 역량 부족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나 테너의 황당한 발성에 기가 막힐 정도인데 애시당초 작품에 전혀 맞지 않는 스타일의 테너를 고른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사람은 누가 선택했을까? 번스타인? 아니면 음반사에서? 라인스도르프만 듣고는 아쉽다 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관록이라는 점에서 번스타인보다는 훨씬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스타인의 베토벤 교향곡은 이후에 나온 빈 필과의 전집을 기약해야 할 것인데, 가만 생각해 보면 과연 번스타인이 베토벤을 잘 다룬 지휘자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이것은 오늘날의 연주 스타일 변화 및 이에 따른 나 자신의 취향이 달라진 탓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는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듯.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금으로서는 번스타인/뉴욕 필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은 저멀리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