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늦어지고 있는 후기. 사실 이번 빈에서의 핵심일정은 바로 이것,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였다.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필립 조르당, 지휘 / 빈 국립오페라
안드레아스 샤거(트리스탄), 니나 스템메(이졸데), 이아인 패터슨(쿠르베날), 크리스타 마이어(브란게네), 크리스토프 피셰서(마르케왕)
5년만에 다시 찾은 빈 국립오페라. 이번 시즌 무대 가림막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잡은 자리는 2층 정중앙. 항상 궁금한 자리였는데 아무튼 예매에 성공. 나중에 보니 우리 부부만 동양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야가 훌륭하고 음향도 훌륭한 이상적인 자리이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썩 편하지는 않았다. 아늑한 방 같은 구조에 만석으로 앉아 있으려니 뭔가 답답.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차면서 보는 내내 은근히 더워서 쾌적한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는 두번째 줄이었는데, 역시 맨 앞줄이 좋을 것 같다. 이 공간은 들어가기 전 코트를 맡기는 공간이 별도로 할당된 것은 좋았다. 비용은 무료.
아무튼.. 내 생에 처음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곡을 실연으로 감상한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지난 번 빈 심포니 내한공연 때 볼 줄 알았으나 보지 못했던 조르당의 지휘를 여기서 보게 되니 이 또한 뭔가 재밌었다. 오케스트라는 노련하게 이 어려운 작품을 술술 잘 풀어나간 느낌인데 그렇다고 아주 어마어마한 것은 아닌 딱 적절한 느낌. 조르당이 나쁘진 않으나 틸레만 정도는 아니다 싶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향은 여전히 듣기 좋게 잘 정돈된 음향이었는데, 다만 총주에서 살짝 뻑뻑하게 들리기도 했다. 예전에 앉았던 사이드 발코니석보다 순간순간 오히려 음향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자주 들어본 것은 아니니 딱히 단정짓기는 애매했다.
전반적으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는데 이 작품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정도면 준수하다 싶었다. 안드레아스 샤거가 생각보다 잘 불러주어서 나쁘지 않았고 니나 스템메는 역시 대단했다. 올해 나이 60에 이졸데라니. 마지막 Liebestod 장면은 정말.. 이 공연 본다고 이번에 이 작품을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갔던 와이프도 마지막장면에서 정말 전율을 느꼈다고 했으니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쿠르베날과 브란게네는 공교롭게도 틸레만의 바이로이트 공연 블루레이에서와 같은 캐스팅이었는데 연출이 전혀 다르다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크리스타 마이어는 역시나 좋았는데 이아인 패터슨은.. 역시나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닌 걸로.
스페인 연출가 칼리스토 비에이토(Calixto Bieito, 1963~)의 무대 연출은 사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썩 구미가 당기진 않았는데 실제로 보았을 때 큰 거부감도 큰 감흥도 없었다. 이 어마어마한 음악의 힘 앞에 연출이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던 걸까? 적어도 나는 큰 감흥이 없었다. 심지어, 3막 초반 배경에 대규모 누드 연기자들이 등장했을 때 조차도 딱히 별 느낌이 없었다. 자극적이지도 신기하지도 않고 그 많은 사람이 왜 벌거벗고 나타났는지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어도 연출 때문에 공연감상이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5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난 공연. 그리고 길게 이어진 커튼콜. 니나 스템메의 모습을 보며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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