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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바그너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칼 뵘 (Orfeo)

by iMac 2009. 1. 1.

바그너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ORFEO) - 칼 뵘 / 1968년 바이로이트 실황


등장 자체가 충격적인 음반이 아닐 수 없다. 뵘의 명가수 전곡음반이라니.. 존재 자체가 충격인데 일단 듣게되면 녹음이 68년의 실황녹음치고는 엄청나게 좋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실황이지만 그다지 뻑뻑하지도 않고 적당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듣기에 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약과이다. 진짜는 뵘의 놀라운 지휘.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며 일필휘지, 단숨에 전곡을 주파하고 있다. 1막이 한장에 오롯이 들어가는 상황. 명가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군더더기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상쾌하기 이를데 없다. 축제극장 특유의 음향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뵘의 압도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카라얀의 기념비적인 EMI녹음을 들을 때에는 종종 이 작품에 대해서 그야말로 바로크 시대 가발을 쓴 바그너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육중한 관현악의 후기 낭만의 모습이지만 그 옛날 뉘른베르크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음악은 바로크풍을 연상케 하는데 그러한 대목들이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사실. 하지만 뵘의 이 음반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적당한 표현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가수들은... 모두들 그런대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크멘트의 중년 아저씨같은 발성은 싫어할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들었다. 어쨌거나 이건 바그너가 아닌가? 상의 노래 보다는 노래를 만들때의 가창이 더 좋았고 그 보다는 1막의 자격시험을 치를때의 노래가 더 좋았다. 그 대목은 질풍처럼 휘몰아치는 뵘의 흐름에 크멘트의 굵직하고 따스한 가창이 더해져서 놀라운 감정의 분출이 느껴진다. 

아담의 작스나 리더부쉬의 포그너 모두 여전한 모습. 3막에서 아담의 부르는 'Ein Kind ward...'는 언제 들어도 그 소박하고도(바그너답지않게!) 낭랑한 선율이 가슴 뭉클한 감동의 순간이요, 1막 포그너의 연설대목에서 리더부쉬는 변함없이 관대하기 그지없는 예술애호가의 존경스런 면모를 품위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대목은 바그너 본인의 목소리 같아서 사실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세상사람들아 이 멋진 사람처럼 예술가인 나를 도와다오... 나한테 기부금좀 다오... 아니면 아내를 나한테 양보해라...' 뭐 등등... ^^;

다비트역의 에세르는 1막에서 목소리가 덜 풀렸는지 영 답답한 모습이어서 아쉬운데 2막부터는 그럭저럭 역할을 다해주고 있다. 그래도 다비트의 등장이 가장 긴 1막을 놓쳐버린 것은 아쉽기만 하다. 헴슬리의 베크메서는 딱히 나쁘지는 않은 수준. 사실 카라얀판의 제레인트 에반스가 보여준 성격배우같은 강렬함에 비하면 다른 모든 베크메서는 정말 선량하기 그지없는 심심한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경꾼역에 쿠르트 몰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는데 아담, 리더부쉬, 몰의 세 사람은 카라얀 판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에바 역의 기네스 존스는 사실 그 어마어마한 성량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30대 초반의 젊음이 느껴지는 목소리 덕에 그런대로 다행이다 싶다. 에바가 이졸데와는 좀 다르지 않은가? 역시나 엄청난 볼륨의 목소리인 것은 변함없지만 좀더 서늘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아주 시원스럽다. 3막의 유명한 5중창은 엄청나게 치솟아 오르는 존스의 에바를 중심으로 나머지 4인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나름대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길고 긴 작품을 정말 단숨에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음반이 등장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결코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