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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4 - 교향곡 제3번 '영웅' & 8번 : 피츠너 (Naxos, 1929/1933)

by iMac 2017. 1. 2.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op.55 '영웅'

교향곡 제8번 F장조 op.93


한스 피츠너,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29/1933년)




베토벤 서거 100주기 교향곡 전집 녹음 중 한스 피츠너가 지휘한 녹음의 마지막 차례. 3번과 8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들어본 이 시리즈의 녹음 중 제일 들을만 했다. 녹음상태도 상대적으로 양호했지만, 그 보다는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볼만한 자극을 던져준 음반.




교향곡 제3번 '영웅'


개인적인 생각으로 3번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중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성공적인 연주도 어려워서 전집녹음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점으로 생각하곤 한다. 3번이 잘 되면 절반은 성공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생각. 그만큼 차고 넘치는 연주들 속에서 만족스러운 연주를 찾기가 쉽지 않은 터라, 본전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피츠너의 연주는 그런 관점에서 어느 정도 안정권을 통과하고 있다.


연주 전반의 느낌은 그 무렵 올드 스타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초반 두 개의 화음부터 이어지는 선율은 느릿하게 움직이며 시작해서 차츰차츰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다가 다시 서정적인 부분에서 서서히 가라앉는 식으로 완급을 오고가는 스타일.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고 토스카니니는 질색을 했을 테지만 그 무렵엔 일상적인 경향이었나보다. 그래도 완급의 대비에 있어 템포변화가 그렇게까지 급작스럽지 않아서 촌스럽게 들리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식의 해석으로 성공한 사람은 푸르트벵글러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피츠너의 이 연주도 나름 성공적이다. 다만 이 연주에는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주술적인 분위기가 빠져있다.


녹음상태도 앞선 두 음반보다 마음에 드는데, 특히 팀파니의 묵직한 타격감이 놀랍다. 템포는 전반적으로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지나치게 느리지도 않고 아주 빠르지도 않은데 3악장의 연주시간이 3:46인 점이 눈에 띈다. 3악장의 템포가 좀 빠르긴 했지만 최근의 아주 빠른 연주들도 5분대인 걸 감안하면 이건 분명히 생략이 이루어졌다는 것. 평소에는 늘 그냥 심드렁하게 듣고 넘어가던 3악장의 구조를 되짚어 보게 된다. 


흔히 3악장은 A-B-A 구조로 알고 있는데, 좀 더 들여다보면 AA-(B-C-B-C-B)-A 정도로 세분할 수 있다. 구조가 단순하지 않고 상당히 다층적인데, 워낙 음악의 흐름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구조를 따져볼 생각이 나지 않는다. 피츠너의 이 연주는 A-(B-C-B)-A 로 단축해 버렸다. 음반 장수를 줄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그 무렵의 악명높은 삭제 관행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던간에 덕분에 3악장의 구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예전 연주들 스타일 그대로이다. 1악장 반복은 역시 생략이고, 1악장 마지막 코다 부분 트럼펫의 가필도 여전하다. 




교향곡 제8번


우선, 결론부터 말해 역시 제법 들을만 한 연주이다. 8번 자체가 무척 매력적인 작품인 동시에 그 맛을 잘 살리기도 쉽지 않은데 이만하면 충분히 작품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 피츠너의 지휘가 구조적으로 단단한 울림을 조형해내는 방식인 점이 이 작품과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 연주에서 주목할 점은 관행적인 프레이징에 대한 부분이다. 1악장 초반 도입부분에서 템포를 살짝 늦춰 소리를 끌어모은 다음 힘을 실어 내리 꽂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런 조형방식은 푸르트벵글러의 녹음에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2009년 녹음인 틸레만의 연주에서도 들을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까지는 그렇다 쳐도 21세기에 틸레만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은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좀 기이하게 느껴졌다. 아래 표시된 같은 부분을 피츠너로 듣고, 틸레만으로 들어보면 틸레만은 피츠너의 해석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 푸르트벵글러를 따라한 것일 수도 있겠다. 


* 피츠너 (1933년) : 13초~15초 부분




*푸르트벵글러 (1953년) : 12~14초 부분



* 틸레만 (2009년) : 44초~46초 부분




결론적으로 여전히 손이 자주 갈만한 수준의 음질은 아니지만, 이 음반은 예전 베토벤 교향곡 해석의 기원을 접하게 해주는 재밌는 기록이다. 최근에까지 답습되는 스타일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