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 발리드 (Les Invalides)
어느새 파리 3일차 일정. 연일 쌀쌀한 날씨 속에 돌아다니다 보니 이만저만 피곤한게 아니었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것은 다행. 파리까지 가서 누워만 있으면 되겠는가?
조식을 먹고 겨우 몸을 추스려 나왔다. 계속 누워만 있고 싶고, 사실 동네 풍경구경도 나쁘지 않아서 정말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밖에 나오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에서 나와 르쿠르브역 부근까지 조금만 걸어나오면 바로 정면에 저멀리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앵발리드의 황금색 돔이 빤히 보인다. 호텔 위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걸어서 나폴레옹 무덤 보러 간다니.
앵발리드가 보이는 동네풍경
아침 9시 조금 넘은 시각. 아득한 느낌을 주면서 저멀리 보이는 황금색 돔의 모습이 신비스럽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저곳까지 천천히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라니!
중앙에 꽤 넓은 폭의 녹지공간이 길게 조성되어 있고 좌우로 가로수길, 도로, 주택가의 순으로 펼쳐져 있다. 서울과 비교하면 녹지공간과 보행자 공간이 정말 엄청나게 넓고 여유있게 확보되어 있다. 빈에서도 느꼈지만 이런 식의 도로 구성은 정말 부럽다.
상쾌한 아침 공기 속을 뚫고 한적한 공원 길을 따라 앞만 보고 천천히 걸어가면 앵발리드의 황금 색 돔이 서서히 커지면서 시야를 가득 메워간다. 천천히 걸어서 대략 20분 정도 걸린 듯. 입구를 찾아 잠시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찾아 들어갔다. 이곳은 옛날 루이 14세가 퇴역 군인들을 위한 요양병원 개념으로 처음 만든 곳이라고 했고 지금은 군사박물관도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군인들이 출입구를 관리하고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국방부가 관리하는 곳인가?
내부로 들어서면 일단 예배당이자 유명한 장군들의 무덤이 모여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사람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확인되는 것은 보방(Vauban, 1633~1707) 하나 뿐이다. '보방'이라면, 역사책에서 별모양으로 설계된 요새 모양이 생각난다. 루이 14세 당시 장군으로 근대적인 요새 설계자로 유명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쟁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보방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곳 중앙 원형으로 뻥 뚫린 지하 공간에 안치된 나폴레옹 무덤이다. 정치적으로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이 생을 마감했지만, 후세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나폴레옹을 필요로 했나보다. 경건한 분위기 한 가운데 자리한 거대한(정말 거대하다!) 대리석 무덤. 장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건물을 돌아다니다 보니 뒤편에 제대로 된 예배당이 있는데 천장에 군기가 가득하다. 나폴레옹 전쟁 등에서 노획한 군기라고 들었는데 한자도 있는 것이 중국에서도 가져온 듯.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건물 뒷편 밖으로 나오면 본격적인 군사박물관과 마주하게 된다. 우뚝 솟은 돔이 인상적이지만 그 뒤로 자리한 장방형의 건물 또한 규모가 상당하다. 거대한 직사각형 회랑을 구성하고 있고 가운데에는 바닥에 돌이 깔린 널찍한 공간이 광장처럼 탁 트여 있다. 시설의 성격과 분위기로 보아 옛날에는 연병장이었던 듯. 회랑을 따라 옛날 대포들이 잔뜩 깔려있다. 전시라기보다 거의 깔려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놓여 있었다. 그 와중에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히트작이었던 르노 탱크도 보인다.
제대로 된 군사박물관 견학은 안에 들어가야 하지만,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상 밖에 전시된 대포 구경으로 대신하고 생략했다. 그대로 쭉 따라 나오면 문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게된다. 아침 일찍 상쾌하게 걸어가서 시작한 일정이어서 그랬는지 여전히 앵발리드는 정말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프랑스인들, 아니 루이 14세가 정말 장대한 규모를 선호했구나 생각되었을 정도로 만만치 않게 거대한 구역이었다.
전날까지 잔뜩 흐렸던 날씨를 생각하면 이날은 정말 양호한 하늘을 보여주었다. 군사박물관에서 나와서 그대로 직진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알렉상드르 3세 다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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