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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5기 #2 - 푸르트벵글러

by iMac 2017. 3. 22.


돌아온 사람 2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푸르트벵글러의 음반을 보고 있으면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있던 유럽에서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러모로 의지박약하기 그지없는 처신을 보여준 푸르트벵글러이기에 극도의 긴장속에 영혼까지 탈탈 털려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지휘봉을 다시 들긴 했고 50년대에 남긴 녹음들의 연주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지만 어쩐지 내게는 황혼을 바라보는 사람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1, 3, 4, 5, 6, 7


위 숫자는 전후에 푸르트벵글러가 빈 필을 지휘해서 스튜디오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넘버들이다. 푸르트벵글러하면 베를린 필과의 밀접한 관계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 시절 힌데미트를 옹호하다가 모든 공직을 사임한 '힌데미트 사건' 이후 2차대전 이후 한동안까지 베를린 필과는 공식적인 관계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베를린에 복귀한 것은 1952년으로, 세상을 떠나기 2년전이었다. 



그 동안 그는 빈 필과 밀월관계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야심만만하게 치고 올라오던 후배 카라얀마저 자신과 카라얀 양자택일하라는 으름장을 놓아 쫓아버릴 정도로 빈에서의 입지는 확고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50년대에 빈 필과 녹음한 일련의 베토벤 녹음들은 푸르트벵글러가 남겨 놓은 말년의 기념사진과도 같다. 


실황 특유의 긴장감은 없지만 황혼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듯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었던 음악의 조화로운 모습의 순간을 포착한 기념비적인 녹음들이다. 이 녹음들 중에서는 1, 3번을 최고로 꼽고 싶다. 1악장 시작이 너무 무겁고 느릿해서 다소 변태적이지만 의외로 듣다보면 빠져드는 6번도 그 다음으로 꼽고 싶다. 빈 필과 전곡녹음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위 사진의 세트는 어거지로 끼워넣은 2번(빈필, 48년 런던실황), 8번(스톡홀름필, 48년 실황), 9번(바이로이트, 51년 실황)으로 겨우 전곡을 채워넣었다.





베를린


푸르트벵글러의 실황녹음이 한 두 종류도 아니지만 베를린 필과의 대표적인 실황녹음은 역시 1952년의 3번 실황을 꼽고 싶다. 음질도 생생하고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압권. 군데군데 실황특유의 실수들도 보이지만 그런 사소한 결함은 문제가 아니다. 1947년의 5, 6번에 대응하는 1954년 5, 6번도 인상적인 연주들로서 최만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예전의 절박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보다 너그럽게 다듬어진 연주들이다.



마지막 정점, 9번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이라면 개인적으로는 3번과 9번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3번을 꼽지만, 아무튼 이제 숱하게 지휘했던 마지막 9번의 순서. 50년대에도 연주가 여럿 보이는데, EMI세트에는 저 유명한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이 수록되어 있다. 유명하기로는 바이로이트 실황이 제일 유명하지만 음악적인 완성도로는 많은 분들이 1953년 빈 필 실황을 꼽는데 이 점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DG에서 발매했던 것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데, 다행히 애플뮤직에서 들을 수 있다.




끝으로 1954년 8월 22일 실황인 루체른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녹음이 있다. 녹음 상태도 아주 훌륭해서 각광받았고 여러 번 재발매 되었는데 심지어 SACD로도 발매되었다. 그리고 푸르트벵글러는 54년 1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연주는 말할 나위 없이 모두 훌륭하다. 느릿하고 묵직하며 장강의 흐름처럼 꿈틀거리다가 엄청난 힘을 실어 용솟음친다. 그렇긴 해도, 이전에 들었던 전쟁 중 실황과 비교하면 확실히 황혼녘의 느낌이 든다. ( 2017/02/26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제3기 #3 - 푸르트벵글러 )


예전에는 마냥 경외의 대상이기만 했는데, 요즘의 느낌은 연주 스타일이 어딘지 모르게 다소 옛스럽게 전형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외없이 가속도를 붙여 미친듯이 질주하며 끝내는 피날레. 이러한 연주는 푸르트벵글러 본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의 유물이 노을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처럼 저물어 가고 새로운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의 역사에 있어서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아니 내 생각에는 진정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