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베토벤 교향곡 녹음들
간만에 재개한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 50년대부터는 가급적 전곡녹음 위주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예외는 있으니 너무 빡빡하지 않게 정리하려고 한다. 먼저 전곡녹음이 아닌 몇 사람부터 정리하기로.
돌아온 사람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1890~1956)는 일전에 1920년대 녹음한 제2번 녹음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그 녹음은 사실 딱히 신기한 점은 없고 녹음도 좋지 못해서 기록으로서의 의미 이상의 느낌은 없었다. ( 2016/12/30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3 - 교향곡 제2번 & 4번 : 피츠너, 클라이버 (Naxos, 1928/1929) )
에리히 클라이버는 1923년부터 1934년까지 베를린 국립 오페라에 재직하다가 1933년 나치의 집권 이후 유태인이 아니었음에도 나치에 반대해서 베를린의 자리를 사임하고 떠나게 된다. 이후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결국은 아르헨티나의 콜론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아들 이름이 스페인식으로 '카를로스'가 된 것도 그 때문.
2차대전이 끝나고 클라이버는 유럽으로 복귀한다. 앞선 낙소스 녹음은 그다지 흥미로울게 없었지만 50년대 비교불가할 정도로 진일보한 데카 녹음으로 남아 있는 일련의 베토벤 교향곡 녹음은 나름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에로이카
데카 레전드 시리즈 낱장으로 발매된 것은 콘서트헤보우와의 3, 5번 녹음. 그 외 다른 녹음들은 이제 낱장으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발매된 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세트음반을 찾는 편이 빠른데 요즘은 그마저도 잘 안보인다. 이럴 때 애플뮤직이 고맙다. 어렵게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바로 들을 수 있다.
콘서트헤보우와는 3, 5, 6, 7번을 녹음했고, 빈 필과는 3, 9번을 녹음했다. 이 세트에는 그 외에도 런던 필과의 6번도 들어 있다. 제법 많은 녹음이 남아 있어서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나머지 곡들도 들어볼수 있었을 듯해서 아쉽다.
녹음의 상태는 역시 콘서트헤보우쪽이 좀 더 낫다. 넉넉한 공간 속에 악단 특유의 따스한 음색이 매력적으로 잘 포착된 녹음. 무엇보다 데카 녹음이다. 그러고 보니 베토벤 교향곡 녹음 기획 시리즈 중에서는 데카 녹음의 첫 등장이기도 하다. 50년대의 다른 녹음, 특히 같은 영국회사였던 EMI의 다소 눅눅한 음향에 비하면 데카는 최신기술로 무장하고 막 등장한 의욕 충만한 신예 음반회사의 활기가 느껴진다. 이제 50년대 음반부터는 녹음이 좀 더 편안하게 들을만하다.
나름대로 다 들을만 하지만, 3번이 두 종류나 남아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빈 필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빈 필쪽이 좀 더 옹골찬 맛이 있다. 전통의 명가 다운 느낌?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작품을 대하는 지휘자의 시선이다.
애플뮤직!
콘서트헤보우 쪽의 녹음이 좀 더 나은 소리이긴 하지만 통상적인 연주관행대로의 연주라면, 빈 필쪽은 그와는 달리 그 무렵의 그 어떤 지휘자의 녹음에서도 듣기 힘든 1악장 제시부 반복과 1악장 코다 부분 가필없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코다부분은 솔직히 좀 흐릿해서 가필을 전혀 안했는지 확신은 안서지만, 그무렵은 물론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아니 요즘 최근까지도(심지어 두다멜이나 샤이마저) 무수히 많은 지휘자들이 사용하는 트럼펫의 의기양양한 팡파르가 들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요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체크하는 구별 포인트이다. 이 두 가지만 들어보아도 그 연주의 성향이 어떠한지 가늠이 된다. 그런 점에서 클라이버/빈 필의 에로이카는 원전연주보다도 시대를 앞서간 즉물적인 해석을 담은 기념비적인 녹음이다. 즉물주의자로 떠받들어지는 토스카니니도 이 두 가지는 당대의 관행과 타협한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인상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9번을 꼽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역시 빈 필과의 녹음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9번의 마지막 마무리. 마지막 대목은 지휘자마다 정말 해석이 제각각인데, 가장 변태적인 정점은 역시 일전에 살펴본 멩겔베르크. ( 2017/02/22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제3기 #2 - 멩겔베르크 / 콘서트헤보우 )
어지간한 지휘자들 모두 템포를 유동적으로 주무르면서 장대한 효과를 연출하는 방향으로 소리를 만들곤 하는데 클라이버는 전혀 그런 것이 없다. 가차없이 기존의 템포 그대로 유지하면서 돌진해 나간다. 그렇다고 마지막 순간을 위해 푸르트벵글러처럼 미친듯이 가속하지도 않는다. 음악의 흐름상 다소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쯤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그야말로 일필휘지 돌파해버리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다시 한 번 인용해서 미안하지만 토스카니니도 그정도는 아니었다. 이야말로 진정한 즉물주의가 아닐까?
그 외 콘서트헤보우와의 5번이 인상적인데 1악장 도입부의 주제 조형이 쉽지 않은데, 이토록 단단하고 적당한 무게감을 실어 다이내믹하게 뛰쳐나올 수 있는 연주는 과연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나 할까?
아쉬운 에필로그
전쟁이 끝나고 유럽으로 돌아온 클라이버. 과연 어땠을까? 나치의 파시즘에 단호히 반대해서 유럽을 떠났던 양심적인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막연한 상식으로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을 것 같은데, 현실은 마냥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대략 읽은 바로는 겉으로는 일단 환영했지만 뒤에서는 나치 치하에서 전쟁 기간 자신들은 죽을 고생을 하는 동안 편하게 외국에서 지내다가 돌아온 사람 정도로 쳐다본 듯 하다. 미묘한 현실.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어떠한 상황이었을지 대략 이해는 된다.
빈 출신이지만 결국 빈 과의 계약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은 이제 소련군이 관리하는 동 베를린 지역. 나치시절과 비교해서 그리 나았을 것 같지는 않고, 결국은 그 자리도 곧 사임한 뒤 스위스에서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래저래 세상 일은 쉽지 않다. 시대를 앞서간 클라이버의 에로이카 연주가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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