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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diary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The Nutcracker and the Four Realms)

by iMac 2018. 12. 16.



백만년 만의 영화 후기. 한주일 동안 바빠서 영화본지 1주일이 지난 다음 올리는 거라 살짝 시의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록은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스팅해본다. 





영화


관심없는 사람은 도통 관심이 없겠지만, 연말이라면 역시 호두까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야기의 배경 자체가 크리스마스날이다보니 자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블로그에도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포스팅을 몇 번 올린 적이 있다. 음악 하나는 정말 걸작이다. 요즈음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보다 이 작품이 더 손에 자주 가는 것이 아이러니.



연말 발레 공연 단골 프로그램인 호두까기 인형을 영화로? 영화라는 관점에서는 반신반의인 상황이지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는 어찌 되었든 꼭 봐야겠다 싶었다. 결론은 딱 적당한 수준의 만족감을 준 영화였다.


영화 후기들을 보면 호평도 있지만 상당수는 이게 뭐냐는 반응도 많이 보인다. 사람 마다 영화 보는 취향과 관점이 다른 것이 사실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뭔가 새롭고 깊이 있는 내용을 보기 보다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비틀어서 다듬어 놓았는지에 중점을 두고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E.T.A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 1776~1822)의 원작 자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동화였고,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로 유명해진 작품인데,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발레라는 장르 자체가 장면 장면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분야이기에 극적 개연성이나 깊이를 기대하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자체로 놓고 보면 정말 내용이 어중간하다. 깊이 있는 내용이나 짜릿한 모험 등등을 기대했다면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기대 없이 장면 장면 자체를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굳이 아쉬움을 적자면, 뭔가 내용이 살짝 깊이가 있을 듯한 분위기를 잡더니만(어머니가 돌아가신 슈탈바움 집안의 가족사), 결론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자는 너무너무 뻔한 디즈니식 결말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역시나, 미국식 주물에 부어지면 호두까기 인형도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음악과 발레


그래도 그나마 이 영화에서 보고 즐길 포인트는 역시 음악과 발레였다. 그래서 더더욱 호두까기 인형 발레 줄거리를 잘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매켄지 포이가 예쁘긴 했다 :)



진지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 역시 어중간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왕창 듣고 싶은데 음악은 좀 감질나게 찔끔찔끔 나온다. 그것도 상당 부분은 영화에 맞춰 편곡된 스타일. 이런게 맘에 안들면 이런 관점에서도 실망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들었다.


두다멜이 지휘하고 랑랑이 피아노를 맡았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첫 시작부터 원작 음악에 피아노가 가세한 버전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나름 음악과 영상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짜맞춘 장면으로 CG에 공을 많이 들였구나 싶었다. 이런 부분들이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을 텐데 음악과 원작의 분위기를 모르면 그냥 심드렁하게 넘어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또한 함정.


영화를 보다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정말 뜻하지 않게 두다멜이 직접 모습을 보여준다. 나만 느낀 것인지 모르지만, 두다멜이 등장하는 장면은 디즈니의 전설적인 고전 애니메이션 판타지아(Fantasia, 1940) 중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대에 등장하는 장면의 오마주이다. 


얼핏 보면 정말 깊이 없는 허접한 영화같지만, 이런 식으로 보면 나름 깨알같은 재미와 깊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클래식음악과 고전영화 덕후를 위한 작품인가 싶기도 하다. 


영화속 환상의 세계에서 클라라가 만나는 호두까기 인형의 이름이 필립 호프먼인 것도 원작자 E.T.A 호프만을 떠올리게 하는 오마주. 


이런 장면을 통해 아주 잠깐이지만 두다멜은 전설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7)의 후예가 된 셈이다. 물론 두다멜이 요즘 한창 핫한 지휘자이긴 하지만 스토코프스키의 아우라에는 역부족이긴 하다. 실제로 판타지아에도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 나온다. 





판타지아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정말 혁명적인 작품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지닌 걸작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나름 정성은 많이 들어갔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오히려 순수히 음악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판타지아가 지금까지 유명한 것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영화 중간과 마지막 엔딩 크레딧 부분에 등장하는 발레 장면은 개인적으로 멋지게 보았다. 덕분에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다 보고 일어나게 되었다. 음악과 영상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발레가 끝나고 진짜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보첼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안드레아 보첼리 목소리 비슷한 누군가의 목소리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보첼리가 아들과 함께 불렀다고. 두다멜의 지휘, 랑랑의 피아노, 보첼리의 노래, 멋진 무용수들의 발레와 댄스. 이런 볼거리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인 2막의 Pas de deux 음악이 나름 영화 속에서도 중요한 부분에 등장해서 반가웠다. 물론 원작에서만큼의 임팩트는 부족했지만.







영화의 상영에 맞추었는지 두다멜이 지휘한 호두까기 인형 신보도 등장했다. 애플뮤직과 타이달에서 즐겨찾기 해놓고 잘 듣고 있다.(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래틀/베를린 필이 더 좋았다) 영화로 대신하긴 했지만 올해에도 나름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긴 본 셈이다. 이렇게 또 한해가 지나간다...



두다멜/LA 필 호두까기 인형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