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오페라 DVD신보 -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피가로의 결혼 (ARTHAUS, EMI)

2007년 라 스칼라 실황 - 로린 마젤 지휘, 안젤라 게오르규 외. (ARTHAUS)

나름대로 화제의 신보. 그런데, 표지를 보면 흔히들 말하는대로 디자이너가 안티인 듯. 게오르규가 나이를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감상을 해 보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임에는 변함이 없는걸 보면 표지 사진은 가장 상태가 안좋은 순간을 캡춰해놓은 것 같다. 

이 공연은, 사실 공연 당시 이래저래 악평에 시달리던 공연으로 소문이 자자했었던 것이기에 이렇게 영상물이 나온 걸 보니 음악 외적으로도 흥미진진하다. 하긴 라 스칼라에서 칼라스 이후 라 트라비아타로 성공을 거둔 적이 얼마나 되던가? 

연출은 저 유명한 프랑코 제피렐리의 것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화찬란한 극사실주의적인 무대를 자랑한다. 이 정도면 메트도 부럽지 않을 수준. 화질도 최상이고... 사실 블루레이로도 동시에 출시되었으니 그 쪽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화질, 음질 모두 최상이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중요한 것은 연주의 완성도이다. 게오르규는 시종일관 열연이지만,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숄티와의 코벤트가든 실황에서 보여주었던 '젊음'이 보이지 않는 점이 정말 아쉽다. 발성도 어째 좀 불안하고... 여전히 아름답지만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이 영상을 통해 게오르규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대단히 만족스러울수도 있겠지만 10여년전 숄티와의 영상물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어서 그런 느낌인지는 몰라도 아리아가 끝난 후 나오는 박수갈채에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의례적이라는 생각. 나머지 가수들은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 

그런데 정작 문제는 마젤이다. 당시 소문에도 마젤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바람에 게오르규가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렸는데 직접 보니 정말 그렇다. 좋게 말하자면 장대한 음향이겠지만, 테누토를 곳곳에서 남발하고 있는 모습은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를 지휘봉에 걸어서 흔들어대는 능력 자체는 대단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베르디가 아닌 것 같다. 젊은 시절 천재 지휘자였던 마젤은 어디가고 이런 매너리즘에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웠다. 

그래도 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갈채는 대단해 보이는데 여러 공연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날을 골라서 편집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듣기로는 라 스칼라의 심술궂은 관객들이 노골적인 야유를 보내는 바람에 마젤이 노발대발했었다는데... 이래저래 진실은 저너머에... 있는 것 같다. 당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 대상이 음악이라면.. 당신의 귀를 우선 믿어야 할 것이다.

2006년 취리히 오페라 실황 - 넬로 산티 지휘, 레오 누치 외. (ARTHAUS)

역시 이번에 같이 수입된 것 같은데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블루레이로도 출시되었다. 아직까지는 선뜻 블루레이는 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SACD플레이어도 정리해버린 마당에 말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튼, 마젤의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나서 이 리골레토를 보면 악몽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래.. 이런게 진짜 베르디지... 암, 그렇고 말고... 

마젤과 거의 같은 연배인 넬로 산티(1931~)는 뚱뚱한 노구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서 암보로 지휘를 하는데 전주곡부터 오케스트라의 울림이 심상치 않다. 팽팽한 긴장감을 품고 맹렬하게 돌진하는듯한 울림이 일품. 시종일관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운 연주. 

백전노장인 누치를 비롯해서 모든 출연진이 호연인데 엘레나 모쉬크(질다)와 피오트르 베찰라(만토바 공작) 모두 흔들림없이 깔끔한 미성을 시원스럽게 뽑아내고 있어 만족스럽고 라즐로 폴가(스파라푸칠레)의 여전히 듬직한 저음도 반갑다. 마달레나역의 카타리나 페츠는 두툼한 메조 소프라노 발성은 물론 팔등신 미인이기까지 해서 시각적으로도 극적상황에 대한 감정이입이 잘 이루어지게 해준다. 

연출의 처음 시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리골레토의 시대배경을 하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지는 몬테로네 백작이 등장하면서 깨닫게 되는데 실은 일종의 코스프레 파티를 하고 있던 것이고 실제 배경은 베르디가 살던 19세기 중후반쯤인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꽤 설득력있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연출이었다. 특히 마지막 폭풍우 장면은 번개가 번뜩이는 가운데 처절하게 고조되어 가는 오케스트라의 비장한 울림이 더해져 숨막힐 듯한 전율을 안겨준다. 하긴, 이 장면은 언제 들어도 그런 것 같긴 하다. 말그대로  Viva Verdi~!!!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타이틀이다. 

2007년 취리히 실황 -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어윈 슈로트 외. (EMI)

EMI에서 요즘 상당한 양의 DVD를 출시하고는 있는데 일부 애호가들은 그 출시행태가 좀 무성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토록 양질의 자료를 보유하고서 발매하는 모양을 보면 그냥 대충 발매하는 것 같다... 즉, 블루레이등 고화질 영상은 아니더라도 그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의견. 영상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인 내가 보기에도 이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만해도 일반 DVD화질에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블루레이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지 않은가? 

각설하고... 이 영상물은 리골레토와 마찬가지로 취리히 오페라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멋진 타이틀이다. 지휘는 이제는 거의 메트의 레바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취리히의 벨저 뫼스트. 물론 훌륭한 지휘자이지만 항상 느끼는 것이 그의 지휘는 동작부터 실제 그가 만들어내는 울림까지 지나치게 금욕적인 측면이 있다. 간혹 기적적인 순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조금씩 아쉽다. 이 연주도 마찬가지로 거의 흠잡을 구석이 없어 보이는 점이 문제이다. 요즘 경향대로 소편성의 박력있는 연주이지만 오케스트라만 떼어놓고 보면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항상 높은 완성도의 연주를 이끌어내는 점은 칭찬할만 하지만 그가 진정한 정상의 지휘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마지막 고개 앞에서 항상 멈춰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 

지휘자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장황하게 적긴 했지만 이 연주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적어도 아르농쿠르의 것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한 때의 열광에서 벗어나 지금은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오페라, 특히 피가로의 결혼 해석에 시큰둥해진 상황인데 아르농쿠르의 과다한 개성이 넘쳐나는 모습보다는 다소 금욕적이고 심심하더라도 단정한 벨저 뫼스트의 해석이 내 취향에는 딱 맞는다. 

가수들은... 다행히도 모두들 잘 해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이 정말 많고 다양하기에 다들 잘 해내기가 쉽지 않은 작품임을 감안하면 이정도면 거의 합격점이다. 가수들의 외모도 개구리 왕눈이같이 생긴 케루비노만 제외하면 모두 드라마의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멋진 모습들이어서 시각적으로도 설득력이 충분하다. 특히 네트렙코와 약혼하고 아이까지 생긴 어윈 슈로트의 피가로는 대단히 인상적이어서 또하나의 명피가로가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트렙코의 연인이라는 점이 우선 이목을 끌겠지만 실제 실력도 대단하고 연기력 또한 출중하기 그지없다.

연출은 현대적인 배경인데 지금까지 닳도록 보아온 웃음의 코드들을 최대한 색다른 아이디어로 다듬어내기 위한 노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시종일관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연출이다. 어느 한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정말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게 재미있다. 

그래도 결국 다 보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역시.. '모차르트'였다. 유쾌한 웃음의 코드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전혀 진부하지 않으며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음악의 힘이란 정말... 현대적인 배경으로 연출된 피가로를 찾는다면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