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라는 영어식 표기가 썩 내키진 않지만 제목으로 적기에 '빈'은 낯설게 보일 듯 싶어 제목만 '비엔나'로 하고 본문에서는 '빈'으로 표기합니다. 참고하세요~
기차 속 자리 찾기
신혼여행 이후 유럽에서 기차를 타 본 건 이번이 처음. 그 때는 패키지여행이라 표만 받아서 타면 되었기에 직접 모든 걸 해야 하는 것은 처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차에 오르니 기차가 만원이다. 좀 더 저렴한 티켓은 자유석이라고 들었는데 좌석을 지정해서 예매하길 천만다행이구나 생각했다. 기차에 오르니 출입구 쪽 짐칸 역시 이미 꽉 차있는 상태. 다행히 객차 중간에도 트렁크 보관함이 있어 겨우 짐을 실었다. 트렁크 보관함을 찾았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겨우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오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 우리 자리인데 오스트리아인 노부부가 앉아 계신다. 또 한 번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 여기 우리 자리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이래저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른 자리 외국인도 우리 티켓을 보더니 우리 자리가 맞다고 거들어 주셨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앉을 자리가 KTX에서 종종 보던 두 사람씩 마주 보고 앉는 방식의 자리였다. 노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으신 것.
제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결론은 우리 부부와 오스트리아 노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상황. 살짝 어색하긴 한데, 아무튼 어수선한 상황도 종료되고 자리를 잡았다.
기차여행
잘츠부르크에서 빈 까지는 레일젯으로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기차는 처음 프라하에서 잘츠부르크로 오던 길에 들렀던 린츠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다음 동쪽으로 달려가는 노선. 초반에 자리 확인 문제 때문에 좀 어색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노부부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초반의 어색함을 덜어내고 한 두마디씩 대화까지 하게되었다. 간식을 꺼내 먹으며 과자 하나 권해 드리고 그 분들도 비타민이 들어 있는 것이라며 사탕 하나씩 주셨다. 낯선 사람과 말을 나누며 함께 하는 이런 것이 기차여행의 색다른 묘미일까?
할머니만 영어가 가능하셔서 대화를 했는데 영어를 배운지는 얼마 되지는 않으셨다고. 그래서 서로 간의 대화는 짤막짤막한 수준. 그래도 그런대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우리는 빈으로 간다고 했더니 두 분은 할아버지 치과 진료 때문에 부다페스트로 간다고 하셨다. 자세한 이야기는 못했지만 아마도 물가가 싸서 가시는 게 아닐까 싶었다.
대화 중간에 검표원이 표검사를 했다. 우리는 인터넷 예매티켓을 출력해서 확인을 받았는데 그거 컴퓨터로 한 거냐며 신기해 하셨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까지 비행기로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시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 그 내용을 할아버지께 다시 전해주시는 듯.
치과 진료는 잘 하셨는지 궁금하다 | 하나씩 나눠주신 사탕 |
할아버지가 펼쳐든 신문을 보고 와이프가 신문 일면기사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니 대통령 선거 관련기사란다. 그 때까지 잘 몰랐는데 빈에 도착해서 검색해 보니 그 무렵 오스트리아는 한창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었다. 기사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할아버지는 뭐라뭐라 짜증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시는데, 내용은 몰라도 십중팔구 정치인들 욕하는 모양새. 정치인들이 맘에 안드는 건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스트리아 대선은 재투표까지 하는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최종 결정되었다. 과연 이 부부는 누구에게 투표하셨을까?
빈 중앙역
대화가 끊기고 피곤함이 몰려와 자다 깨다 하다보니 어느새 빈 중앙역에 도착했다. 2시간 반이면 아주 양호한 여행인 셈이다. 노부부께 작별인사를 고하고 빈 중앙역에 내렸다. 역에 내려 지하도를 거쳐 중앙역안에 들어서니 수많은 인파가 분주히 오고가는 모습에 순간 대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그 동안 거쳐온 프라하, 잘츠부르크 모두 예전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개념으로 보면 모두 지방도시들이었던 셈이니 지방도시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훨씬 세련되고, 도시적이며, 규모면에서 순식간에 확장된 공간 속으로 순식간에 던져진 그런 느낌. 결론은 여행객을 무척이나 설레게 만든다는 것.
빈 중앙역 | 드디어 출구! 빈에 도착했다! |
중앙역에 내려 관광안내소를 찾아 비엔나 카드 72시간권을 구입했다. 이걸로 대중교통과 각종 입장권 할인은 해결된다. 19일부터 23일까지 빈에서 4박 5일을 지내야 하니 비엔나 카드 사용개시는 최대한 늦춰야겠기에 일단 24시간 지하철표를 끊었다. 체코에서나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지하철, 트램 모두 같은 표를 사용하고 교통수단 최초 이용시 사용시간을 찍은 다음 부터는 티켓을 소지하고 타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 처럼 개찰구가 전혀 없다는 점이 여행기간 내내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신에 불시 검문시 적발되면 처벌이 엄격하다고 하는데, 아무튼 타고 내릴 때 표를 찍는 절차가 없는 덕분에 이용객의 이동이 훨씬 원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빈의 지하철 분위기는 흡사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 서울 시내 지하철 모습과 비슷해서 어딘지 친근한 느낌이다. 중앙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Karlsplatz역 까지는 2정거장이어서 금새 도착했다. 처음엔 출구를 잘 못찾아서 잠시 헤맸는데 겨우 출구를 찾았다. 출구의 빛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드디어, 진짜, 빈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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